공채시즌에 구직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고통은 역시나 자기소개서 작성의 고통이다. 겸손이 미덕인 나라에서 ‘난 진짜 너무 잘났어요’라고 포장해야 하는 글을 1천 자도 넘게 써야 하니 그 수고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이쯤 돼서 생각해 볼만한 것이, 그 렇게 괴롭게 쓴 입사지원서를 읽는 인사담당자는 또 얼마나 괴롭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입사지원서라는 것이 매우 식상한데다 ‘비 호감’이라면 그 괴로움의 강도는 말할 것도 없을 것. 입 사지원서의 1차적인 목표는 나를 소개하기? 나 를 채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아니다. 입사지원서의 1차적인 목표는 인사담당자의 ‘호감’을 사는 것, 식상하고 재미없는 입사지원서를 제출함으로써 인사담당자의 피곤을 가중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면 자기소개서는 신선해야 한다. 식상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당장 서류통과만을 목표로 이곳 저곳 이력서를 찔러보는 구직자들은 여전히 비호감 쩌는 문구들을 남발하고 있다. 아 래는 실제로 인크루트가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입사지원서의 ‘비호감’ 문구 베스트 5다. 차근차근 읽으면서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인사담당자를 괴롭게 만들었는지 회개하며 앞으로의 자기소개서 작성에 참고하도록 하자. (문구 옆의 비호감 게이지는 해당 문구를 콕 찝어 말한 인사담당자의 비율이다.)
- 뽑아만 주신다면! (비호감게이지 73)
정말 뽑아만 주신다면 뭐든지 할 것인가? 마케팅으 로 지원했는데 영업을 시켜도 괜찮다는 것인가? 8시간 근무로 알고 들어왔는데 12시간을 일 시켜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뽑 아만 주신다면? 안 뽑겠다면 어쩔 것인가?
생각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다. 가뜩 이나 최근 기업은 실무에 가까운 인재를 찾고 있고, 지원한 직무 관련경험이 많은 지원자를 선발하는 추세인데, 쌩뚱맞게도 ‘뽑 아만 주면 난 못하는 게 없다’는 얘길 하고 앉았다. 그러나 기업은 한 분야에 소신과 열정을 갖고 지원한 사람이라면 기타 다른 분야를 못하는 것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신입사원이지, 닥치는 대로 뭐든 해치우는 불도저가 아니다.
그리고 어차피 입사지원서에서의 포부는 뽑혔다는 걸 가정하고 쓰는 것이다. 날 떨어뜨릴 이유 같은 건 없다는 자신감으로 당당히 향후 계획을 밝혀도 모자랄 판에 뽑아 달라는 얘기를 저렇게 처절하게 하고 있다는 건, 역으로 내가 뽑힐 이유가 별로 없어서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입사에 대한 열의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인사담당자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으 로 보일 필요는 없다.
- 우등생, 1등, 반장 (비호감게이지 71)
학교 다닐 때 반장 한번 안 해본 사람 있나? 그 리고 혹시 지금 이거 자랑임?
이미 서두에서 우리나라는 겸손이 미덕인 나라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식 자랑이 지나치면 팔불출로 불리고, 자기 자랑은 ‘자뻑’이란 속어로 표현되는 나라 아닌가. 그렇다보니 누군가의 자랑은 일단 비호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입사지원서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인사담당자들은 이렇게 자랑하는 듯한 문구를 비호감으로 많이 뽑았다. ‘재학기간 내내 반장을 도맡았고’ ‘일류 최고의’, ‘OO 업무를 전담했습니다’ 처럼 ‘내 가 잘나서 난 지금까지 못한 게 없고 나 혼자 모든 성과를 냈다’ 는 식의 언급 말이다.
기업은 지원자의 능력만큼이나 팀내에서의 융화력을 본다. 이 미 만들어져있는 팀에 새롭게 투입될 신입사원이기 때문. 지나친 자기자랑은 이러한 융화력 및 대인관계를 의심케 한다. 물 론 지원자들은 이걸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감과 ‘재수없음’은 정말 한 끝 차이라는 걸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비호감게이지 56)
솔직히, 뭘? 지 금 우리가 진실게임을 하자는 것인가? 왜 갑자기 돼도 않게 수줍어하고 난리인가. 여 기가 맞선 자리인가? 맞선에 앞서 솔직히 내 결함 정도는 선공개하고 시작하겠다, 뭐 그런 것인가?
‘솔 직히 말씀 드리자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고개는 들고 어깨는 펴고 당당하게 서 있을 것 같은가? 아마 몸을 있는 대로 움츠리고 손은 입가에 바짝 붙여 소근거릴 것이다. 이런 류의 문구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문구를 서두에 띄우는 것은 자기에게 좀 불리한 얘기를 꺼내야 할 때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나는 조금 덤벙대는 성격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진 못했다’ 이런 식이다. 물론 덤벙대는 성격과 낮은 학점 등은 자랑이 아니니 숨기듯 표현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점은 있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보완하느냐다. 보완책만 마련된다면 단점은 더 이상 단점이 아니니 괜히 자신감을 잃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사담당자는 자신감이 없어 쭈뼛거리는 지원자를 뽑고 싶어하지 않는다.
게다가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은 뭔가 은밀하게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여 담인데, 앞머리 숱이 많은 지원자를 싫어한다는 인사담당자가 있었다. 이유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 같아서’. 당신은 인사담당자가 얼마나 예민한 존재인지 알 필요가 있다.
- 준비된 인재 (비호감게이지 56)
지겹지도 않은가… 그리고 인재라고? 지금 본인 입으로 자기가 인재라는 거임?
‘준 비된 인재’라… 이 말은 보통 선거 유세기간에 질리도록 들을 수 있다. 자신을 ‘준 비된 대통령’, ’준비된 시장’ 등등 으로 표현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 상투성과 공허함에 치를 떨어본 적은 없는가?
‘준비’나 ‘인재’ 같은 단어는 사실 부연설명이 없는 한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다. 중요한 것은 무슨 준비를 했는지와, 자신이 인재인 이유다. 그런데 저 ‘준비된 인재’라는 추상적인 말을 자신을 표현하는 키워드처럼 사용하는 구직자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인사담당자들은 그런 구직자를 현실가능성 없는 공약만 남발하는 정치인처럼 여긴다. ‘준비’는 자기가 무슨 준비를 했는지 설명할 때나 쓰면 되고 ‘인재’는 내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인재라는 설명으로 대체하면 된다.
게다가 신입이 본인을 무려 ‘인재’라고 지칭하는 것은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신을 설명할 표현을 못 찾은 것이다. ‘내가 인재여야 이 회사가 나를 뽑을 텐데, 나를 인재라고 설명할 근거가 없으니 할 수 있는 말이 ‘인재’ 밖 에 없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러나 ‘인 재’라는 호평은 당신이 아니라 인사담당자가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인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가 당신을 인재라고 평가할 수 있도록 근거를 대라.
- 화목한 가정의 몇남 몇녀 중 몇째로 태어나 (비호감게이지 63)
그래. 나도 화목한 가정의 1남 1녀 중 둘째다. 근데 화목한 가정의 1남 1녀 중 둘째가 대한민국에 한둘인가? 그래서 대체 뭘 어쩌라는 것인가?
이런 말을 아직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가? 아 직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 되게 많다. 아 무래도 지원자들에게는 ‘나는 화목한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아 온순하게 자란 착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사담당자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실제로 대기업의 입사지원서에서 ‘성장배경’이 란 항목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그 사람이 가정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가 직무능력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 러니 굳이 성장배경을 언급하고 싶다면 자기가 지원하는 직무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금융권 취업을 희망하는 지원자가 금융업에 종사했던 가족의 영향을 받아 그에 필요한 자격요건들을 갖추게 되었다면 그것은 훌륭한 성장배경일 것이다.
물론 지원자들은 성장배경을 통해 자신의 인성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성은 일단 서류 통과하고 면접에서 보여주면 된다. 지원자의 인성은 자기소개서의 성장배경 몇 줄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사담당자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