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선 유진그룹 회장(62)에게 늘 따라붙는 꼬리표다. 2004년 유진그룹 회장에 오른 후 그의 행보는 놀라웠다. 2004년 고려시멘트를 시작으로 2007년 로젠택배, 한국GW물류, 한국통운, 서울증권, 하이마트를 잇달아 인수합병해 일약 M&A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1969년 군납 건빵 식품회사로 출발한 유진이 M&A를 통해 물류, 유통, 금융, 건설소재 등으로 그룹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회사 규모도 커져 30대 그룹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차입금 부담이 급증한 데다, 주력이던 레미콘 업황도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결국 2008년 그룹의 부채비율이 310%에 달하자 주거래 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했다. 이후 유진투자증권 지분과 일부 계열사, 자산 매각 등 그간 유동성 확보에 주력해야 했다. 자산 기준 재계순위표 상위권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유진그룹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사업 확장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던 데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외부 악재가 겹쳤다. 인수한 회사들을 통해 사업 시너지를 살리는 데도 성공하지 못하면서 재무위기로 이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랬던 유경선 회장과 유진그룹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할 태세다.
유진그룹은 최근 현대저축은행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인수가 확정되면 유진투자증권, 유진자산운용 등 기존 금융 계열사들과의 협업은 물론 그룹의 외형 확장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앞서 유진그룹은 지난해에 법정관리를 졸업한 옛 동양그룹 지주사 ㈜동양의 경영권을 손에 쥐었다.
이 밖에도 국내 1위 채권평가사인 한국자산평가를 사들였고, 계열사인 유진프라이빗에쿼티를 통해서는 우회적으로 파인리조트를 인수했다.
지난 한 해 동안 M&A를 위해 그룹 자체적으로 쏟아부은 금액만 3000억원을 웃돈다. 상황이 이렇자 시장에선 유 회장 앞에 다시금 ‘M&A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다.
▶왕성한 사업 욕심
▷동양에 이어 현대저축은행도
유경선 회장의 왕성한 사업 욕심은 그대로지만 방식은 과거와 달라졌다.
유진투자증권의 한 간부는 “최근 (유경선 회장의) 신사업 행보를 보면 비교적 규모가 작은 알짜 회사를 인수해 외형보다 실속을 앞세운다. 과거 하이마트 인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유진그룹은 2008년 매출액 규모가 유진 전체 덩치보다 두 배나 많은 하이마트를 1조95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유진그룹은 인수 차입금 중 70%를 차입으로 조달했다. 이 같은 부담에 유진그룹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2012년에 하이마트를 다시 팔아야 했다. 더구나 유 회장이 하이마트 인수 과정에서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과 지분율, 경영권과 관련해 이면계약을 맺은 것도 문제가 됐다. 이 같은 경험이 유 회장의 전략에 변화를 준 것이란 설명이다.
기존에 영위하고 있는 사업과의 연결성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 뚜렷하다.
지난해 인수에 성공한 동양은 레미콘 사업이 핵심이다. 동양그룹 시절 확보한 생산시설과 영업력은 레미콘이 주력인 유진그룹에 상당한 도움이 기대된다. 실제 레미콘 사업과 관련해 동양은 24개 공장을 보유 중이어서 유진기업의 29개 공장과 합쳐질 경우 전국적으로 53개 공장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유진기업 공장들은 수도권과 충청, 호남을 중심으로 분포된 반면 동양의 공장은 부산, 울산, 창원 등 영남권과 강원을 중심으로 위치해 겹치지 않고 전국적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자산 규모만 봐도 그렇다. 유진의 자산(1조4000억원)에 동양 자산(1조2000억원)이 더해지며 자산 규모가 2배가량 늘어났다. 또한 주력인 레미콘 분야에서 업계 수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삼표를 제치고 단숨에 압도적 1위로 치고 나갈 발판을 마련했다.
앞서 파인리조트는 골프장을 비롯해 스키장, 콘도 등 종합리조트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이 역시 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골프장과 시너지가 기대된다.
▶기존 사업 실적도 상승세
▷유진기업 지난해 매출 1조원 달성
유진기업의 홈 인테리어 브랜드 ‘홈데이’ 사업도 인수합병은 아니지만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로 주목받는다. 홈데이는 홈 인테리어(집안 개조) 개념의 종합 건축자재 매장으로 고객이 주방가구, 위생도기, 벽지, 타일, 창호, 바닥재 등 국내외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비교하고 원하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고객 맞춤형 설계를 제공한다. 서울 목동에 위치한 홈데이 1호점은 개장 6개월 만에 2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안에 2·3호점 출점도 검토 중이다.
홈데이의 모태가 된 사업은 유진기업이 영위하던 건자재 유통이다. 유진기업은 레미콘 영업에서 축적한 경험과 전국에 구축된 네트워크를 활용해 철근을 시작으로 지난 2013년 건자재 유통사업에 처음 진출했다. 첫해 매출 114억원에 이어 2014년 388억원, 지난해 981억원을 기록하며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경선 회장의 왕성한 신사업 추진에는 믿을 만한 뒷배도 있다.
바로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상승이다. 유진그룹의 모기업인 유진기업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0.8% 증가한 1조746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5년 전인 2012년 6657억원이던 매출액이 5년 동안 61.4%나 성장한 것이다. 외형 성장과 맞물려 내실도 다졌다. 2012년 67억원 적자를 보였던 영업이익은 이후 2013년 381억원 흑자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966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부채비율도 95.9%로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유진기업에 대해 “그간 확보하지 못했던 레미콘 1위로서의 구매력이 동양 인수로 시멘트사를 대상으로 발휘되면서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동양과의 시너지를 통해서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 분석했다.
금융부문 실적도 견조하다. 유진투자증권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적자던 당기순이익이 2013년 흑자전환, 2014년 64억원, 2015년 519억원, 2016년 459억원으로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 또한 영업수익도 2012년 4945억원에서 2016년 7152억원으로 5년 동안 44.6% 상승했다.
▶전망은
▷‘대형 인수 나서나’ 관심
실적과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 유경선 회장과 유진그룹의 행보에 일단은 파란불이 켜졌다.
재계의 관심은 향후 행보에 쏠린다. 유경선 회장은 올 초 “경영 환경이 급변할수록 신사업 발굴을 통해 기업 체질을 바꾸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아무리 외부 환경이 어려워도 회사가 끊임없이 변화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속적으로 인수합병과 신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형 딜에 참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유진그룹은 하이마트 실패 후 규모가 1조원 이상 될 수 있는 M&A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거의 없지만, 참여한 딜에서는 상당한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시장에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일 게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유경선 회장이 본인의 장기인 인수합병으로 명예 회복과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리스크 요인은 여전하다고 지적한다.
유진그룹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유 회장 주도 아래 과거부터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력은 레미콘이다. 이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급하게 대형 딜에 나섰다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보장도 없는 만큼, 느리지만 확실한 성과를 내는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09호 (2017.05.24~05.30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