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0 10:20
1조원.
컴투스의 간판 모바일 RPG(역할수행게임) ‘서머너즈워 : 천공의 아레나(이하 ‘서머너즈워’)’가 지난 3년간 거둔 글로벌 누적 매출이다. ‘리니지’ ‘크로스파이어’ 등 온라인 게임 중에선 누적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사례가 적잖았지만 모바일 게임은 서머너즈워가 최초다. 특히 3년 만에 1조원 돌파는 온라인 게임을 포함해도 가장 빠른 기록. 최근 침체된 게임업계에선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서머너즈워의 흥행으로 다시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송병준 게임빌·컴투스 대표(41)다. 2000년 모바일 게임업체 게임빌을 창업하고 2013년 10월 인수한 컴투스 대표도 겸임하고 있다. 그가 컴투스를 인수했을 때 컴투스에선 이미 서머너즈워 개발이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인수 6개월 만인 2014년 4월 게임이 출시됐다. 단 6개월은 서머너즈워 전체 개발 기간의 3분의 1이란 점에서 송 대표의 막판 지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조용한 조력자’로서 송 대표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컴투스 인수 당시 업계에선 게임빌과 컴투스가 합병될 것이란 관측이 적잖았다. 둘 다 모바일 게임이란 동종업체였으니 일견 합병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결과적으로 송 대표는 합병 대신 각개약진을 선택했다. 비슷하지만 다른 양 사의 개성과 기업문화를 존중한 결정이었다.
▶자유도 중시하는 미국 게이머 타깃
몬스터 캐릭터만 1000개, 상성 다양
할리우드 스타 등 맞춤형 마케팅도 한몫
컴투스는 주로 게임 개발에, 게임빌은 퍼블리싱(서비스)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 회사다. 현재 게임빌이 서비스 중인 게임 가운데 퍼블리싱만 하는 게임은 80%에 이르지만 컴투스는 30%뿐이다. 개발 인력도 컴투스는 전체 직원(약 700명)의 70%(약 500명)에 달한다. 전체 직원이 500여명에 불과한 게임빌이 컴투스를 인수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컴투스 관계자는 “송 대표는 인수 후에도 컴투스 게임 개발 부서에 직접적인 지시나 개입을 잘 안 했다. 그간 해오던 방식이나 틀을 바꾸지 않고 믿고 맡기는 게 어쩌면 최선의 지원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개발은 일임하되, 마케팅 과정에서 송 대표는 끊임없이 글로벌 진출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피처폰 시절인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했던 송 대표의 ‘글로벌 본능’에 기인한다.
덕분인지 서머너즈워는 해외 시장에서 성공한 국내 게임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서머너즈워는 출시 이후 53개국 앱스토어, 11개국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게임 매출 1위를 달성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매출 1~3위 국가가 미국, 일본, EU일 만큼 동서양에서 고른 인기를 얻었다. 해외 시장 성공 사례가 대부분 중국에 쏠려 있던 데서 탈피한 것도 의미 깊다.
서머너즈워의 성공 비결로 업계에선 개발부터 마케팅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글로벌 전략’을 꼽는다. 서머너즈워는 전략의 가변성과 자유도를 중시하는 미국 게이머의 성향에 맞춰 개발 단계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포켓몬스터처럼 게이머가 소환한 몬스터끼리 대결을 벌이는 이 게임은 몬스터 캐릭터만 1000여개, 몬스터가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무기)과 레벨은 조합에 따라 수천수만 가지에 이른다. 또 마치 ‘가위바위보’처럼 캐릭터 간 상성이나 밸런스 조절에도 신경 썼다. 가령 몬스터 A가 B를 이기고, B가 C를 이긴다 해서 A가 C를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이처럼 높은 자유도와 전략성 때문에 세계 게이머들한테 3년 넘게 꾸준한 사랑을 얻고 있다는 평가다.
컴투스는 인사 정책도 글로벌화했다. 컴투스는 자사 게임 콘텐츠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외국인 직원만 약 40명에 이른다. 전체 직원의 5%가 넘는 수준이다. 컴투스 관계자는 “현지화 단계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게 언어다. 일반 게임업체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외국어 번역은 외주를 맡기는 편이다. 그러나 외주업체 인력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번역이 어색하기 쉽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컴투스는 외국인 40여명을 직접 채용했다”고 귀띔했다.
국가별 마케팅 전략도 달리했다. 서구권에선 영화 ‘나우 유 씨 미’ 주연 배우인 데이브 프랭코와 알리슨 모리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할리우드 스타 모델 기용 사례는 국내 모바일 게임업계는 물론, 다른 업계를 통틀어도 드물다. 반면 일본에선 할아버지 여러 명이 등장해 춤을 추는 뜻 모를 광고로 까다로운 일본 게이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 유럽에선 옥외 광고와 TV, 유튜브, SNS 등 다수 미디어를 활용한 캠페인을 진행해 효과를 봤다. 특히 세계 각국 게이머들이 서로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월드 아레나(글로벌 게이머 간 실시간 대전)’ 업데이트는 서머너즈워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줬다. 약 4개월간의 시범 서비스 기간 중 3000만여건의 게임이 진행돼 2억4000만여 몬스터가 대결을 벌였다. 총 242개 국가 게이머가 참여한 이 대회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나라는 미국(439만승)이었고, 일본(122만승)과 독일(110만승)이 멀찌감치서 뒤를 이었다. 한국(86만승)은 6위에 그쳤다. 모바일 게임 강국인 우리나라가 순위권에 못 들 만큼 해외에서 인기가 대단한 셈이다.
이 같은 글로벌 맞춤형 마케팅 전략으로 서머너즈워는 전 세계에서 매일 접속자 수(DAU) 100만명, 다운로드 7500만건 이상, 3년간 누적 매출 1조원, 영업이익률 38%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는 국산 중형 승용차 33만6000대, 최신 스마트폰 441만대의 판매 이익과 맞먹는 수준. 서머너즈워 혼자 매출의 약 70%를 담당한 덕분에 컴투스는 지난해 매출 5156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다.
송 대표의 다음 목표는 뭘까.
우선 컴투스는 서머너즈워가 글로벌 콘텐츠가 된 만큼, 이를 매개로 한 부가 매출 창출이 최대 임무로 꼽힌다. 당장 서머너즈워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서머너즈워 MMORPG(대규모 다중 접속 온라인 RPG)’가 내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컴투스 관계자는 “서머너즈워가 향후 10년 이상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서머너즈워를 활용한 소설,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문화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처럼 e-스포츠로의 확장도 검토 중이다. 지난 3월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시범경기 초청전에는 600석 한정인데 10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고 자랑했다. 단 송 대표의 ‘친정’인 게임빌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1623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46억원에 불과해 영업이익률(2.8%)이 웬만한 제조업체보다 못하다. 글로벌 금융기관 크레디트스위스(CS)는 분석 보고서를 통해 “게임빌은 지난해 새로운 히트작이 없었고 여러 게임들의 출시가 지연됐다. 퍼블리싱 게임이 너무 많아 수익성도 낮다”며 “실적이 극적으로 반등하려면 자체 개발한 게임에서 히트작이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긍정적인 신호는 있다. 게임빌이 준비 중인 모바일 신작 게임 ‘워오브크라운’은 해외에서만 86%가 최근 사전예약을 신청할 만큼 반응이 좋다. 비록 CS의 주문처럼 자체 개발 게임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신작 게임의 흥행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란 평가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게임빌은 지난해 연이은 신작 출시 실패와 지연으로 컴투스의 지분가치(25.3%)에도 못 미칠 만큼 저평가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작 게임이 성공한다면 게임빌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