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7 17:32
“최근 행보를 보면 기존 유통 사업은 철저히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신사업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나서고 있다. 외형 확대와 내실 경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리는 모습이다.”
현대백화점 공격경영을 지켜본 한 재계 관계자의 총평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44)을 가리켜 더 이상 ‘은둔의 경영자’라고 부르지 않아도 될 듯하다. 침체에 빠진 유통업계에서 정 회장이 보이는 행보는 남다르다. 주요 알짜 기업 인수에 적극 참여하는가 하면, 점포 숫자는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면세점 사업도 뛰어들었다. 공격경영으로 빚이 늘 법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현대백화점 부채비율은 고작 34.6%로 재계 최상위권이다. 불황을 걱정하는 유통업계가 정 회장의 마법 같은 경영을 주목하는 이유다.
▶지난해부터 5개 매장 오픈
▷임차 방식으로 점포 수 확대
2007년 12월. 30대 중반 나이로 그룹을 맡게 된 정지선 회장에게 쏟아진 관심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는 ‘은둔’을 자처했다. 외부 공개석상에 나서지도 않았고 신규 사업 진출은 최대한 자제했다.
2010년 창립 39주년 기념식에서 ‘비전 2020’을 발표하면서 변신을 꾀한다.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 영업이익 2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현대백화점그룹 매출은 8조5000억원. 유통 사업만으로 2배 이상 매출을 늘리긴 어렵다. 정 회장이 비유통 분야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정지선식 투트랙 전략 핵심
위험 줄이고 효율성 극대화
백화점 3사 중 이익률 으뜸
목표 달성을 위해 2012년 가구 제조업체 리바트(현 현대리바트)와 패션기업 한섬을 연이어 인수했다. 인수 초에는 갖가지 의문부호가 달렸다. 현대백화점이 가구나 패션 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처음 한섬과 리바트는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인수 전보다 실적이 나빠져 한때 ‘실패한 인수’란 평가도 받았다. 이는 기우에 그쳤다. 2014년 이후 양 사는 서서히 시장에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그룹 알짜 계열사로 거듭났다.
지난해 한섬과 현대리바트는 각각 6168억원, 694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7.5%, 8% 성장한 수치다. 2012년 인수 당시 양 사 매출은 합쳐 1조원 남짓. 지금은 1조3000억원이 넘는다. 외형만 커진 것도 아니다. 한섬 영업이익률은 10.7%, 현대리바트도 5.8%로 수익성이 좋아졌다. 현대리바트는 인수 직전 2011년 영업이익률이 1.8%에 불과했다.
한섬과 현대리바트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자, 정 회장은 자신감을 얻기 시작한다. 이전과 달리 점포 숫자를 크게 늘리면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백화점, 복합쇼핑몰, 아웃렛 등 총 5개 점포를 열었다. 지난해 2월 프리미엄아울렛 김포점을 시작으로 5월 백화점 디큐브시티, 8월 백화점 판교점을 잇따라 오픈했다. 올해 3월엔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점, 4월엔 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 문도 열었다. 백화점 3사 중 가장 공격적인 행보다. 내년 상반기엔 현대시티아울렛 가든파이브점(가칭) 오픈을, 2019년 하반기엔 동탄과 남양주에도 신규 점포를 낼 계획이다. 최근엔 여의도 ‘파크원(Parc1)’빌딩에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을 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 회장이 직접 “파크원에 들어서는 현대백화점은 대한민국 최고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할 만큼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파크원 성공을 위해 선택한 것은 장기임대 방식이다. 이전 유통업체들은 백화점이나 아웃렛을 짓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지었다. 현대백화점은 토지를 사고 건물을 짓는 대신 임대 방식으로 점포를 운영 중이다. 파크원 백화점도 연 임대료 300억원을 주고 20년간 빌리기로 했다. 최근 출점했거나 앞으로 출점 예정인 점포 6곳이 이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기존 오프라인 유통 사업은 불확실성이 크다. 점포를 늘리긴 하지만 위험 부담을 줄이는 선에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M&A 적극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뚜렷한 성과 없어
올 상반기 현대백화점 총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7%, 11% 증가했다. 업계 평균을 크게 웃돈다. 삼성증권은 올해 현대백화점 영업이익률이 7.5%로 롯데백화점(6.1%)과 신세계(4.4%)를 크게 앞지를 것으로 내다봤다. 부채비율은 불과 30% 중반. 신세계와 롯데백화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남옥진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백화점은 M&A(인수합병)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한 성장의 윤곽이 명확해지고 있다”며 “유통업 성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현대백화점 사업 다각화는 유통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탄탄한 실탄을 바탕으로 정 회장은 유통 분야 외 신사업 추진과 인수합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면세점 사업. 지난해 정 회장은 면세점 1차 대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절치부심 끝에 ‘현대백화점면세점’이란 이름으로 별도 법인 설립 등기를 마쳤다.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만큼 ‘배수의 진’을 치고 이번 면세점 특허권 입찰에 임하겠다는 의지다. 중국 17개 여행사와 MOU를 체결하고 중국인 관광객 200만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현대백화점이 발표한 면세점 부지는 삼성동 무역센터점 8~10층. 면세점 업계 한 관계자는 “입지만 놓고 보면 무역센터점은 여러 후보지 중 굉장히 뛰어난 편이다. 명동에 이어 강남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삼성동에 면세점이 들어서면 코엑스 단지는 컨벤션, 엔터테인먼트, 숙박에 쇼핑까지 아우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SK네트웍스 패션 부문 사업 인수도 적극 검토 중이다. 만약 한섬이 SK네트웍스 패션 부문을 손에 넣으면 신세계인터내셔날을 제치고 패션업계 3위로 도약한다. 한섬은 국내 자체 브랜드 사업에 비해 수입 부문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K네트웍스 패션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한섬은 현대백화점 주력 계열사로 떠오를 수 있다. 한섬은 중국 유통업체 항저우지항실업유한공사와 약 800억원 규모 독점 공급계약을 체결하면서 중국 시장 진출도 앞두고 있다.
물론 현대백화점의 투트랙 전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수익성과 미래 성장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전략이지만 유통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 자칫 한 마리도 제대로 잡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지난 7월 진행됐던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운영권 입찰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엑스몰 입찰은 매출 1위 점포 무역센터점과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 현대백화점의 참여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은 막판 수익성을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다. 최근 진행된 동양매직 인수건도 입찰 가격을 1000억원 이상 높게 쓴 SK네트웍스에 넘겨준 바 있다. SK네트웍스 패션 사업 부문 인수도 인수 대상을 놓고 양 사 의견 차이가 있다. 실제 인수로 이어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정 회장의 공격경영이 결실을 맺으려면 반드시 면세 사업권을 따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사업 경험이 없다. 게다가 지난해 특허권을 뺏긴 롯데와 SK네트웍스, 사업 확장을 노리는 신세계와 호텔신라 등이 버티고 있다. 경쟁 상대가 만만찮다. 이 중 2곳을 이길 수 있을지 미지수다. 면세점 입찰마저도 탈락하면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가 어려워진다.
내년이면 정 회장 취임 1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12월이 되면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주인공이 갈린다.
정 회장이 면세점 사업권 확보를 통해 취임 10주년을 웃으며 맞이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